고려 예종 때
척준경과 함께 영주지방에서 여진족을 무찌른 장군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왕자지(王字之)였다.
고려 개국공신 왕유의 후손이다.
왕자지의 아버지는 해주 서리 출신이었다.
왕국모는 이자의의 난 당시 처남 왕자지로 하여금 본궐의 문을 폐쇄하게 하였고
이 공을 바탕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윤관의 북방 개척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예종 3년 병마판관(兵馬判官)이 되었고,
윤관의 휘하에서 소드마스터 척준경과 함께 함주와 영주 지방에서 여진족을 무찔렀다.
척준경과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 듯한데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말을 빼앗기고 죽을 뻔했다.
이때 척준경이 구해주고 말을 잃은 그를 위해 적을 추격해
장갑마 1필을 얻어줘서 가까워졌다고.
그 뒤 쭉쭉 승진하여 추밀원사와 이부상서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이후 사은 겸 진봉사로 송나라에 갔다가 대성아악을 가지고 귀국했다.
말년에는 참지정사로 있다가 1122년 향년 57세로 사망했다.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받고 예종의 묘정에 배향받는 영예를 안았으나
뒷날 탐욕스럽다는 이유로 배향 공신 자격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와 끝내 배향을 철회했다.
재밌는 사실은 이 왕자지 장군은 내시 출신이란 것이다.
ps
비슷한 이름으로는 후대 명종조 인물인 무장 신보지(申寶至)가 있으며 김자지(金自知) 선생도 있다. 김자지는 고려 말 ~ 조선 초기의 문관으로, 그 역시 나름대로의 업적이 있음에도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자로 김원명이라고 부르면 되긴 된다.
중등과정 국사 교육 과정에서 참으로 민망하고 난감한 어감으로 인해 잘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기도 하다. 비슷한 사례로는 고려시대에 널리 퍼진 '이씨가 왕이 된다'는 소문이었던 '십팔자위왕'이 있다.
기겁하겠네
형~ 너무 진지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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