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박정희의 유신정권과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전두환의 항복을 받기까지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서울대 임이 분명합니다.
김문수, 심재철, 심상정 따위도 참여했으니 말 다했죠.
전 아직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 수십만명 대학생이 모였습니다.
전 당시 1학년 신입생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연합 시위는 몇일전부터 계속되었고 도망다니다
탱크를 만나면 그 공포에 주저앉고 했습니다.
니중에 생각하면 왜 광화문, 시청에
탱크와 군인들이 있었는지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죠.
당시 연합 주도는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 고려대 신계륜 등이었고
서울대 대의원 회장이 유시민, 복학생 회장이 이해찬이었습니다
당시 경찰 포위를 뚫고 합류한 대학교는 신촌지역 연세대, 서강대
충무로의 동국대, 성북구 고려대 그리고 그 넘어 경희대와 외대까지 합류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시위하고 치안본부장(지금의 경찰청정) 회유로
무사 귀가를 보장받고 집에 갈 사람은 가고 일부는 가까운 동국대와
연세대 캠퍼스에서 노래하며 노숙했습니다.
그리고 5월17일 휴교령이 떨어지고 군인과 경찰이 캠퍼스에 진입하고
모든 학생은 학교에서 체포되거나 쫒겨납니다.
바로 다음날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무차별 폭력 진압이 시작됩니다.
보안이 어찌나 철저했는지 광주 상황은 6월이 될때까지
그 지역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60대 초중반 세대는 광주에 빚이 있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서울은 서울역 시위만 유지했더라면 광주는 괜찮았을까?
우리가 철군해서 광주가 그리 되었다는 죄책감......
당시 철군 주범은 심재철 서울대총학생회장입니다.
나중에 체포되어 제일 먼저 협조하고 그런 당에서
국회의원 5선하며 국회부의장한 사람입니다.
심재철 다리 절고 지팡이 집는거 보셨죠?
그때 고문으로 그리 된겁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길어졌습니다.
그당시에는 정의와 공정에 진심이고 민주화에 리더였던
서울대가 21세기에는 왜 탈바꿈 했을까?
궁금하지 않나요?
궁금하면 추천후 다음편에.......
그와중에 친일파 유전자들이 살아있었다는 증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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