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에는 반대했습니다. 김대중은 1993년 8월 24일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와 동교동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조선총독부 철거를 역사파괴란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월간조선 인쇄본에는 실리지 않았는데 김대중이 직접 인터뷰 내용을 교정 과정에서 삭제했기 때문입니다. 현직 김영삼 대통령 비판에 부담을 느꼈다고 합니다. 김대중은 1995년 인터뷰도 같은 취지를 반복했고 김종필도 당시엔 철거를 반대했습니다.
DJ가 약간 현실을 나이브하게 봤을수도 있음. YS같은 대쪽같은 단호함도 때론 필요할때가 있는데... 그리고 박정희.전두환 시기 동안 일본에 도피해 머무르던 시기도 좀 되니까. 일본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어떤면에선 그렇게까지 대적감을 가지고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수도 있다고 생각함.
드디어 8월 15일 광복절 오전 9시, 옛 총독부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장에서 중앙돔 첨탑 분리에 앞서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은 해방 50년 만에 이뤄지는 일제 상징의 제거를 호국영령들에게 고하는 고유문을 낭독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 복원작업과 새 문화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그리고 9시 21분, 커다란 기중기가 첨탑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리에 1인치 굵기의 쇠밧줄 다섯 개를 걸고 서서히 첨탑을 들어올렸다. 첨탑 중에서도 11.4톤짜리 첨탑 윗부분이 먼저 들어올려진 것이다. 첨탑의 일부분이 들어올려지는 순간, 광복절 경축행사에 모인 5만여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부채를 흔들며 일제 잔재의 청산을 환영했다. 이어 건물 주변에 설치된 수백발의 폭죽과 불꽃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첨탑이 기중기에 매달려 지상으로 옮겨지는 동안 광화문 앞 경축행사장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다시 찾은 빛>이 장엄히 울려퍼졌으며 이내 잘려진 첨탑은 15분만인 9시 35분에 지상으로 완전히 내려졌다. 이러한 모습을 본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누가 저 탑이 잘려나가리라 생각했냐"며 "이젠 철거-보존을 둘러싸고 갈라진 국론을 새 민족박물관 건립으로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첨탐 철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지하보관소로 옮겼다가 중앙청 바로 옆에 있는 구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 건물로 이전되었다. 이후 1996년 초부터 차근차근 기계식으로 절단해서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철거해 나가 그해 말에는 완전히 해체했다. 한편 잘린 첨탑은 1995년 8월 말까지 구총독부 앞 마당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가 이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만약 우리광복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면 좋았겠지.
그랬다면 일본놈후손들이 자랑스레 사진찍고 그러진 않겠지.
사이판 자살절벽이나 이오지마 동굴에서 자랑스럽게 기념사진 찍고 지랄하지 않는것처럼.
일본새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미국에게 패배한거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에는 진적이 없다. 꼭 다시 올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영삼이 잘한건 총독부건풀 폭파철거와 금융실명제 그리고 하나회 숙청
못한선 IMF 불러들이도록 경제관리 젬병
민주당 정부는 언제나 욕 얻어먹으면서 똥치우다 볼 일 다본다는거
권력유지를 위해 수십만명 죽여 세계10대 학살자로 통하는 이승만과는 비교가 안되지
그런데 국부?
친일매국 역사 사기꾼이 판치는 나라
대통령실로 활용하고 싶어 했을 수도...
한국인들이 반대했다는 게 납득이 안되네
그만큼 이 나라에 쪽바리 추종세력이 많다는 반증
쪽국이 좋으면 섬나라로 꺼져라
이 나라에서 토나오게 토왜짓하지말고!!!
딱 토착왜구들 숫자지요
문재인 였으면 의견 수렴 5년 내내하다 서로 욕하고 싸우다 아무 결론 없이~~
저자리에 그대로 살아있었을듯...
탄생시킨장본인 아닌가요
남겨뒀으면 좋았을듯
어차피 한국이 나중엔 일본 위로 올라갈테니 그때
일본인들이 저 건물보면서 얼마다 분할까 하는 마음도 있음
전국민 삥뜯어서 이완용이가
NIMIPPON 에 바친
독립문도 없애야 마땅하나
총맞아 뒈진 놈이 문화재로만듬
일본 피신해 있던 시절이 있어서 그게 클 수 있겠군요,.. 도움도 받고..
이 급살맞을 새끼야~~ 어이그~
갖고 간다고
사정도 했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당시에도 있었디면 과감히 저렇게 했을까??수국꼴통들은 당연히 보존하자고 했을거고...
근데 형 수국꼴통이 아니로 수구꼴통이야.
책좀 봐라 좀.
하나회 군세력 철퇴도!!!
일제 청산도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ㅜㅜ
서울시청 건물 보호하려고 뉴친일매국노기사단이바로
쪽빠리의 버르장머리는 계속 고쳐줘야 됩니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 복원작업과 새 문화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그리고 9시 21분, 커다란 기중기가 첨탑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리에 1인치 굵기의 쇠밧줄 다섯 개를 걸고 서서히 첨탑을 들어올렸다. 첨탑 중에서도 11.4톤짜리 첨탑 윗부분이 먼저 들어올려진 것이다. 첨탑의 일부분이 들어올려지는 순간, 광복절 경축행사에 모인 5만여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고 부채를 흔들며 일제 잔재의 청산을 환영했다. 이어 건물 주변에 설치된 수백발의 폭죽과 불꽃이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첨탑이 기중기에 매달려 지상으로 옮겨지는 동안 광화문 앞 경축행사장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연주하는 <다시 찾은 빛>이 장엄히 울려퍼졌으며 이내 잘려진 첨탑은 15분만인 9시 35분에 지상으로 완전히 내려졌다. 이러한 모습을 본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누가 저 탑이 잘려나가리라 생각했냐"며 "이젠 철거-보존을 둘러싸고 갈라진 국론을 새 민족박물관 건립으로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첨탐 철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지하보관소로 옮겼다가 중앙청 바로 옆에 있는 구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 건물로 이전되었다. 이후 1996년 초부터 차근차근 기계식으로 절단해서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철거해 나가 그해 말에는 완전히 해체했다. 한편 잘린 첨탑은 1995년 8월 말까지 구총독부 앞 마당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가 이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서울 사대문안에 아직많음
그랬다면 일본놈후손들이 자랑스레 사진찍고 그러진 않겠지.
사이판 자살절벽이나 이오지마 동굴에서 자랑스럽게 기념사진 찍고 지랄하지 않는것처럼.
일본새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미국에게 패배한거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에는 진적이 없다. 꼭 다시 올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못한선 IMF 불러들이도록 경제관리 젬병
민주당 정부는 언제나 욕 얻어먹으면서 똥치우다 볼 일 다본다는거
권력유지를 위해 수십만명 죽여 세계10대 학살자로 통하는 이승만과는 비교가 안되지
그런데 국부?
친일매국 역사 사기꾼이 판치는 나라
그때도 지금도 쭉 존재해왔던 그것들 3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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