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묘를 쓸때에 조개 껍대기 갈아서 관을 짜는 풍습이 있어다 이것은 석회 물질로 알칼리성을 띄어
뼈가 부식되는 걸 막아 주었다 숫가루를 아래와 위에도 뿌려 숫가루가 썩지 않는 걸 알아서 파묘하다 보면 뚜렷이 볼수 있다
3백년 넘은 것을 파병하다 보면 정말로 옷가지며 그릇이며 심지어 뼈도 그대로인걸 볼수 있다 조상의 뛰어남을 새삼 느낀다
근데 지금은 50년만 지나도 흔적도 없는 것이 많다 이유는 물론 산성화다 농사비료가 문제이고 땅이 숨을 못쉬는 것 (석관)도 문제이고 10년 지나도 물이 안빠져 육체보다도 뼈가 먼저 시꺼멓게 되어 뼈가 먼저 썩어간다.. 육체가 빨리 녹아서 없어지고 뼈만 오스락 남아야 되는데 요즘은 개판이다
파병하는 사람입니다..
맨자리 개장해서 봤는데 120년 된 명당자리에 유골이 손뼈까지 고스란히 수습한 기억 있습니다.
무당이말한대로 물차있는 묘가있었음
겉으론 아무이상없는데
그집자손들 꿈에 자꾸 조상님이 춥다그랬다는데
그 묘파니까 지하수가 터진것마냥 물이 계속나오더라고요 그때 쫌 소름돋았음 미신같으면서 또 그럴땐 뭔가있긴한거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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