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의 이모저모
1. 축구를 처음 시작한 나라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두가 열광하는 스포츠.
축구는 각각 11명으로 짜여진 두 팀이 손과 팔을 제외한 신체의 모든 부위를 사용해 상대편 골에 공을 쳐서 넣음으로써 득점을 겨루는 구기종목의 하나이다.
축구의 정식 명칭은 '어소시에이션풋볼'로 흔히 세계 여러나라에서는 'association'의 'soc'를 빼내어 '사커(soccer)'라고 부르며, 풋볼이라고도 한다.
골을 지키는 키퍼는 손과 팔 등 전신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규칙이 간단해서 공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운동 경기이다.
남자들이라면 친구들과 마음껏 온 몸에 영광의 상처를 남기며 운동장을 누비던 추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텐데, 축구는 어느 나라에서 처음 시작했는지 퀴즈를 통해 알아볼까요?
퀴즈의 정답은 몆번일까요?
2. 축구의 역사
축구의 유래를 더듬어 보면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하지만 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정확한 기원은 정해져 있지 않다.
수학적으로 어떤 나라가 언제부터 공을 차기 시작했다라고 하기엔 너무나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단지 문헌에 따르면 공을 가지고 논다든지, 공을 차는 놀이 등 축구형식의 운동은 기원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축구는 B.C 7~6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에서 행한' 에피스키로스'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에피스키로스)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의 황제시대에 궁중안에서 하던 '축국'이라고 해서 발로 차는 운동이 행하여졌다.
(축국 - 송대의 축국을 나타낸 구리 거울)
그뒤 로마시대에는 축구가 군사경기로 널리 보급되었고, 로마가 영국을 침략했을 때 '하르파스툼(Harpastum)'이라는 경기가 널리 퍼져 이것이 근대 축구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르파스툼은 머리털을 가득 채운 가죽 볼을 던지고 차고 하는 간단한 형식을 말한다.
또한 정설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11세기(1042년) 덴마크인에 의해 정복당했던 영국이 덴마크의 압제를 벗어나자 덴마크인들에게 복수하는 뜻에서 그들 병사들의 두개골을 차기 시작한데서부터 차는 것을 즐겨했는데, 이것이 축구의 유래라고 하기도 한다.
두개골은 나중에 돼지의 오줌보로 변화되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축구의 시작은 영국의 풋볼이라 할 수 있다.
(돼지의 오줌보)
중국도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로 만든 공으로 놀거나, 꽁꽁 묶은 돼지 오줌보를 차며 축구와 비슷한 운동경기를 했다고 한다. 남아메리카에서도 옛날부터 축구와 비슷한 운동경기를 했는데, 지는 사람은 목숨을 내놓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나라에서 축구와 비슷한 운동을 했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 방식을 처음으로 시작한 나라는 영국이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축구경기는 217년 영국에서 성령강림절의 화요일에 더비에서 개최된 경기로서, 로마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을 기념하는 축제의 일환으로 행해졌으며, 1175년에 이르러 영국에서는 축구경기가 연례행사로 열렸다.
축구가 현재와 같은 스포츠로서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1800년대라고 한다. 1800년대 영국에서의 풋볼은 무질서한 가운데 행해졌기 때문에 각 축구팀들은 통일된 경기규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63년 10월 26일 풋볼 그룹의 대표자들은 런던에 모여 제1차 회의를 가졌으나 회의는 부진한 상태로 끝났다.
그러다가 같은 해 12월 8일 개최된 제6차 회의에서 협회가 규칙을 통일하고 공인된 규약과 경기규칙을 인쇄하여 발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 결과 협회가 인정하는 경기규칙에 의한 축구가 생겨났으며, 이것이 '어소시에이션풋볼'의 탄생이다.
영국에서 조직화되고 발전한 축구는 영국에 유학한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고국에 보급되었고, 영국인 목사, 선교사, 군인, 상인들에 의해 세계 각국에 소개되어졌다.
축구는 세계적인 열광 속에 1904년 국제관리기구로서 FIFA를 탄생시켰고, FIFA 가입국은 203개국(1998)에 이른다.
현재 범세계적 경기로 행해지고 있는 축구대회는 1900년 올림픽 경기대회에서 개최되었던축구경기와 그 중간에 4년마다 아마추어나 프로선수 모두 참가하여 열리는 월드컵 축구대회, 월드컵 여자축구대회, 세계 청소년축구대회 등이 있다.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단체 경기로서 관중의 호응도가 높은데, 1969년에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 '축구전쟁(Soccer War)'이 발발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극성스러운 영국 응원단(훌리건)이 일으키는 집단난동이 잘 알려져 있다.
3. 신라시대 월드컵 축국에 대하여
(김유신 VS 김춘추)
우리나라는 <삼국사기>에 신라시대에 '축국(蹴鞠)'이라는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축국이란 가죽으로 싼 공을 차고 노는 공놀이를 뜻하며, 축구(蹴毬), 기구(氣毬), 희구(戱毬)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축국은 운동장 양 끝에 구멍을 파놓고 공을 넣은 형태, 운동장 양쪽에 설치된 공문에 공을 넣는 형태, 오늘날 제기차기와 같은 형태 등 종류가 워낙 다양했고, 주로 군사훈련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축국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신라시대에 김유신이 축국 놀이 도중 김춘추의 옷자락을 밟아 찢은 뒤, 자신의 여동생 문희(훗날의 문명왕후)에게 바느질을 시켜 둘을 이어주었다는 얘기이다.
삼국시대에 이어 발해와 통일신라 시기에는 말을 타고 공을 치는 격구가 성행하는 바람에 축국은 민간을 중심으로 성행하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발달해 겨울철 세시풍속으로 아이들이 가장 즐기던 놀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세기 말 서양의 근대식 축구가 도입되면서 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4. 한국의 축구사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축구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군인들에 의해서라고 한다.
바닷가에서 영국 군인들이 축구를 할 때 옆에서 구경을 하던 아이들에게 군인들이 축구공을 주었고 이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축구가 전파되기 시작했다고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축구가 정식으로 보급된것은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학교에서 축구를 체육과목의 하나로 채택하면서 부터였다.
1905년 6월에는 서울훈련원에서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의 간의 한국 최초의 공개 축구경기가 개최되었고, 1928년 5월에는 조선심판협회가 창립되었다.
이후 1933년 9월 19일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정식으로 창립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해산, 1948년 9월 4일 대한축구협회로 개칭하여 새롭게 출범하였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도 함께 이뤄졌고, 1954년에는 아시아축구연맹(AFC)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으로 출전하면서 국제대회에 진출했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대회에서 최초로 본선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후 1983년 아시아 최초의 본격 프로리그인 슈퍼리그라는 이름으로 한국 최초의 프로축구가 5개 팀으로 출범했다.
한편 한국 대표팀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9회 연속(총 10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함으로써 아시아 최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되었다. 특히 2002년 일본과 공동으로 개최한 한일 공동월드컵에서는 월드컵 최고의 성적인 4강이라는 기록을 수립해, 전 국민적인 축구 열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뿐미소 손 흥민^^
( 도슨트 ㅎㅎ)
월드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분들
이제부터 쿨~쿨 잘 주무실꺼죠?
이상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쌔배온자료로 김준아가만든 축구역사의 이모저모 였습니다.ㅎㅎ
2002년 열기를 다시한번 느끼며 기가막힌 모든골이 요기들어 있어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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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붉은 축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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