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7일 아침 추가 글 올림
주말동안 정말 많은 분들께서 따뜻한 위로와 또 따끔한 조언을 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나이 50에 고아"라는 표현에 대해, 거북함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으셨다니 이점에 대해서는 깊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제가 이미 뱉은 말이고, 그저 저만의 슬픔에 많은 분들의 사정을 모두 헤아릴 수 많은 없었다는 점에 대해 한번 더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말씀대로 힘을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저도 신경정신과(원래 10년 다른 증세로 넘게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요.
제가 적은 내용이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은 뭐 당연한 사실이구요. 제가 그렇다고 그렇게 잘난인물도 아닙니다. 그저 제 직업의 특성상 고향과는 가까이 있을 수 없는 직업이고, 아버지께서는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셨으니까요...
현재 형님과도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 노력중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어느정도 자산이 있다고 적었는데, 지방에서 그럭저럭 빚지고 살지 않을 정도의 자산이라는 뜻이지, 대단한 재력가는 아닙니다. 핸드폰으로 답글을 달다보니 여러가지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답변도 있었던 점에 대해서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올해만 수술을 두번이나 하다보니 몸도 정신도 많이 피폐해져있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분의 글처럼 제가 제대로 행실도 처하지 못한채 이곳에서 넋두리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분께도 양해 말씀 올립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넋두리는 그만하고, 남은 생 제 가족을 위해, 형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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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제목 그대로 제 나이 50... 저는 이제 고아입니다.
2020년 초 말기암으로 어머님께서 멀리 떠나셨고 (그래도 4개월이라는 기간을 주셨었죠...), 그리고 지금부터 약 2주전 아버님께서 고독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참 나쁜 놈이죠... 저와 제 형이 있는데 둘다 고향에서 떠나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형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연락을 안하고 살았으며 (둘이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저하고만 연락을 하시고, 제가 종종 찾아뵈었었죠.
하필 추석 연휴 직전 제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을 하게 되었고, 추석 연휴기간에 전화통화를 드렸었던 것이 마지막 통화입니다... 저는 수술 이후의 치료 및 재활, 그리고 밀린 회사 업무 등으로 정신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하지만, 다 핑계입니다.
솔직히 연세가 많으신 아버님에게 매일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어야 하나, 솔직히 아들내미가 매일 전화해서 무슨말을 얼마나 할까요... 그래서, 짧게는 3일, 길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전화를 드렸었는데, 이번에는 딱 3주만에 전화를 드렸었고, 통화가 되지 않더군요. 뭐랄까요... 그 이상한 느낌... 고향에 사시는 친척분께 아버님댁 방문을 요청 드렸고, 제 머릿속에는 세가지 상황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제가 전화를 3주만에 전화를 드렸는데, 처음 전화는 받지 않은채로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고, 그 다음 전화부터는 전원이 꺼져있다는 멘트가 계속 나오고 있었기에, 혹시 급한 마음에 전화를 받으려고 하시다가 전화기를 놓쳐서 전화가 고장났는가 하는 생각... (제가 사는 주변에서 자급제 폰을 살 준비까지 다 했었습니다.)
두번째는 너무 편찮으셔서 폰 충전도 제대로 못하고 누워계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마지막은 혹시나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제게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다 제 불찰이지요. 세번째 상황이었습니다. 제 친척분이 아버님댁에 도착하셔서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인기척이 없다고 하시기에 제가 119에 상황설명을 하고 문을 강제개방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혹한 현실을 전해 듣게 되었지요...
당일 오전에 업무 미팅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계속 상기 세가지 상황만이 머릿속을 떠돌아 다니고 있었는데, 가장 가혹한 현실을 부딪히게 될 줄이야... 어떤 분은 그러시겠지요. 전화통화가 안될때 바로 가보지 그랬냐... 제가 사는 곳과 고향은 약 260km 정도 되는 거리이며, 저는 저 위에도 설명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재활치료 중이라 장거리 운전은 주치의가 하지말라고 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역시 핑계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제가 고향까지 운전해서 가는동안 제 집사람은 어떻게 해서는 저를 정신 차리게 하려고 부던히 노력했고, 평소같으면 3시간반이면 갈 수 있던 고향을 다섯시간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현장의 사진, 그리고 고독사를 하셨기에 꼭 할 수밖에 없었던 부검... (사인은 심근경색이셨다고 하더군요... 사망 추정시간은 발견일로부터 대략 10일~14일전...) 제가 일주일만 더 빨리 통화했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2주가 지난 지금도 제 가슴에 구멍이 나있는듯하네요.
제 형은 제게 소식을 듣고 저보다 빨리 장례식장에 도착했고 (형은 고향에서 약 90km 정도 떨어진 곳에 삽니다.), 장례식 준비를 하고 있더군요... 어머님께서 떠나신 후 5년동안 한번도 연락조차 안드리더니, 저보다 먼저 도착해서 장례식준비를 하며, 친척들을 만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밉기도 하고... 그래도 형 노릇을 하려나 싶기도 하고...
제가 국민학교 시절 (요즘은 초등학교라고 하죠) 아버님께서 하시던 사업은 크게 실패하셨고,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친척의 도움으로 전세 300만원짜리 흙벽돌에 스레트 지붕으로 된 집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교통편은 시내버스 한시간에 한번, 막차는 시내에서 저녁 9시반... 놓치면 대략 4~50분 가량을 어두운 길로 걸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 이후 약 10년을 빚쟁이들을 피해 친척/친지들 집을 전전하셨고, 그 이후 변변한 직업을 가져보신 적이 없으며, 어머님께서는 공장 하청업체의 포장반에서 돌아가시기 6개월전까지 일을 하시다가 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영세민으로 보내게 되었지요... 형은 어긋나져 갔고, 어머님께서는 끝까지 저희를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아버지는 어린시절 그 어떤 인물, 위인보다 더 존경스럽고, 위대하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리가 굵어질 수록 왜 이렇게... 라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와 멀어지기 시작했고, 어머님의 작고를 계기로 아버지에게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를 쏟아내었었죠... 제 업입니다. 후회요? 다 제가 선택한 길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허망함을 느끼고, 다시는 아버지를 뵐 수 없다는 현실 뿐이지요...
저를 정말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머님...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해준 것이 없다고 느끼셨기에 나설수도 뭐라 할 수도 없던 아버지... 그나마 5년동안 조금씩 다시 가까워 지는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제가 쏟아낸 그 말들은 너무나 비수와 같았고, 아버지께서는 상처입은 맹수처럼 웅크리고 혼자만 계시면서 다른이와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생활지원사요청도 거부하시고, 제가 뭐라도 해드릴려고 하면 다 반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보니, 생각지도 않던 현금 다발이 몇천만원 나오더군요... 제게만 알려주셨던 위치에 있던 서류가방(비밀번호도 저에게만...)에요. 형이 있는 곳에서 가방을 열었고, 저도 깜짝 놀랬습니다. 아버지께서 늘상 "내가 죽으면 그거는 꼭 네가 챙겨. 형에게 보여주지 말고..."라고 하셨던... 제가 가슴에 비수를 꽂았던 아버지께서는 노령연금, 국민연금, 독거생활노인 지원금등을 받으시면서 (제가 보내드렸던 얼마되지 않던 용돈까지...) 다 모아서 그 가방에 넣어 놓으셨던 겁니다...
저는 이죄를 영원히 씻을 수 없겠지요... 저는 영원히 아버지께 용서를 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렇기에 제 가슴에는 어머님께서 돌아가실 때와는 다른 커다란 구멍이 난 듯 하네요...
그냥, 날도 쌀쌀하고, 제 제리에 혼자 앉아서 이렇게 긴글 적어봤습니다.
긴글 읽어주신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첨언을 드리자면, 제가 말할 자격은 없는 나쁜 놈이지만, 부모님께 안부 자주 전하세요.
이기적이지만, 저는 저의 가족을 위해, 또 저를 위해 오늘도 재활치료하러 갑니다...






































마음 추스리고 열심히 살아가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다만 외부인의 시선으로 봐서 고독사지
당사자 입장에선 수면이나 휴식의 연장일수도 있겠고요.
자손들 빙 둘러싸여 배우자 무릎베고 죽는게 과연 당사자는 더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통상 관찰자 입장에서 고독사라고 하는게
소변줄 센서줄 주렁주렁 달고 중환자실에서 장기부전으로 쇼크사 하는것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고결한 죽음일수도 있겠죠.
마음에 짐지지 말고 편안하게 이별하시기 바랍니다.
5년전에 어머니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의성 시골에서 아버지홀로 계시다가 췌장암으로 2년전에 돌아가셨어요.
자식이 부모를 떠나보내드린는건 어찌됐든간에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시고
현재와 미래의 일에 집중합시다.
다만, 제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듯 합니다.
고인의 입장에서 한편으론 본인께서 짐이되지
않으시려고.....
제사상에 값비싼 음식이 소용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부모님 살아생전 즐기시라고
매주 모시고 밥도먹고 합니다.
사먹는것보다 좋아하시는거 직접 잡아다가
직접요리를 해드리는편입니다.
해루질,낚시를 취미로하고있어서....
학교다닐때 수없이 읽고 쓰고했지만.
현실에선 어렵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처지라 더욱 안타깝습니다.
변해간 나의 벌인거죠 매일 밤 난 물끄러미
거울에 비쳐진 날 바라보며
왠지 모를 난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지만 메마른 표정은
그건 그저 버티고 있는 내 초라함이죠
내 빛바랜 마음이 내 바램 대로
더럽혀진 한줌의 재로
간주중
엄마 내가 이제 이 세상에
무릎을 꿇어버린 것만 같아서 웃음이 나와
허무하게 깨어진 빛바랜 나와의 약속
결국 나는 못 지킨 채
내 혀를 깨물어 이곳에 줄을 섰어
이제 내가 제발이라는 말을 배워도 되나요
내 빛바랜 마음이 내 바램 대로
더럽혀진 한줌의 재로
내가 가엾게 엄마 나 울더라도
나를 감싸주지는 마
나 저 높이 나의 별을 놓아
내 약속을 돌릴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위로와 그 충고들은 모두 거짓말
어쩌면 다 모두 다 같은 꿈 모두가 가식 뿐
더 이상 이 길엔 희망은 없는가
혹시 내 어머니처럼 나의 옆에서
내가 고개를 돌려주기만 기다리는 건 아닐까
모두 같아 같아 같아 내가 엄마의 손등에
키스하길 바라는 건 이젠 욕심일까 굿바이
서태지. 제로라는 노래입니다.
힘내세요.
맘 추스리고 힘냅시다.
저도 올해 특히나 힘든 나날이네요.
삼재도 벗어난 해인데 ㅜㅜ
힘 내시고
치료 잘 받으시고요
어머님의 희생
아버님의 의지
모두 대단하십니다
아버님도 다 이해하실 겁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도 부모잖아요.
아이를 훈계하고 싸워도 다 이해하잖아요.
이해하실 겁니다.
계실땐 술만 마셔서 미웠다가도 가시고나니 잘해준기억만 떠오르네요
건강관리 조금씩은 해서
아직까지는 크게 아픈 것은 없는데
부모님이 70중반 되어가시니
들어 놓으신 보험은 없으시고
이래저래 병원비로 많이 나가네요...
올해만 병원 응급실에 2번 가셨다가
입원에 수술도 하셔서 ㅠ,.ㅠ
그래서 못해도 2주에 한 번씩은 꼭 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동생은 일본에 살고 있어서 자주 못오지만
일본갔을때 돌아가시면
왜 집 한 편에 부모님의 사진을 두고
향과 기도하는 곳을 두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돌아가셨어도
잊지 않고 아침마다 기도드리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운 점이 있으시다면
자주 기도 드리시고 인사 드리시면
좋아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유오성이야? ㅋ
부모님의 사업실패와 가난을 탓하지마.
그건 아니야..그러고 싶으셨겠어?
그리고 치료를 받는다..? 이기적.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
천륜으로는 어차피 형들 둘다 불효자야.
어디 절에서 천도재라도 잘 모셔드려.
난 지금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등기임원이고, 남부럽지 않은 학벌과 자산을 보유중이요. 본인의 삶을 내게 대지 마시오.
등기임원님 제 삶을 언제 형한테 댔어여?
ㅋㅋㅋㅋ 형이랑 형의 형 둘다
불효자라고. 이게 뭘 댄거야?
이상한 형이네 학벌 자산 있으면 뭐해
홀로 남은 아버지 고독사 하셨는데
형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봐?
나는 그런 삶은 안살계획이야
형한테 댄적 없어
안타까운점은 형제가 한마음 한뜻으로 좀더 많은 관심을 가지셧으면 하는 마음이..
고3때 어머니 돌아가시고
3년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올해 5월에 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형과 내가족들이 남았는데
제가 살아있을때는 가족이 먼저 떠나는걸
그만 겪고 싶습니다
영원히 살수는 없지만
누구든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다들 무탈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죄책감은 그만 털어 내시고 그리움으로 간직 하세요
저두 두분 다 돌아 가셨지만..많이 힘들었어요 근 3개월을 우울증에 술로 살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괜찮습니다만
외로운 아이라는 뜻도 가진 한자어입니다. 물론 다른 사전적 의미가 당연히 있지요.
저는 그 외로움과 괴로움을 언급한것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효도하며 사시게요 다들
" 난 부모님의 사업실패를 탓한적 없소.
그저, 어머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했지.
난 지금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등기임원이고,
남부럽지 않은 학벌과 자산을 보유중이요. "
계속 되새겨보세요.
중소기업 등기임원이고 남부럽지않은 학벌과 자산을 보유중이던 시간이
단시간에 이뤄졌을까요?
그 기간동안 글쓴이의 아버님을 주변으로 모실생각은 없으셨고요?
개인적견해로 말씀드립니다.
글쓴이분은 그저 서류가방에서 나온 몇천만원의 돈을보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형몰래 너만 보라했던 그 말에 울컥한거죠.
제 3자가 보기에 글쓴이분은,
" 돈도있고 명예도있는데 거리가 멀고 내 몸이 불편해서 아버지를 봉양하기가 꺼려졌었다. " 라는
마음에 제 3자가 많은 곳에서 위안받거나 속풀이하려고 글쓴것일뿐인듯 보입니다.
부모 살아 계실제 노력해야할뿐 돌아가셔서 비싼상석 올려드리고,
좋은곳에 묘 써드리면 뭐합니까?
이 모든 행위가 본인속 편해지려는 이기적행동으로보일뿐,
지나고나면 부질없는 짓이죠.
저를 비난 하셔도 좋지만, 오해는 바로 잡고 싶네요.
글만 읽어도 너무 마음 아픈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모진 소리 듣고도 가방에 둘째 주려고 돈 하나도 안쓰고 다 모아두시고 외롭게 돌아가신거 생각하니 진짜 슬프네요
저도 작년에 아빠 돌아가셨는데 자주 보고 했는데도 후회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한동안 진짜 힘들었어요
아버지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힘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운명은 바꿀수가 없어요.
너무 자책감 가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늘나라 좋은곳에서 극락왕생 하고 계실거예요!
삶에 여유가 있으시면 49제라도 지내주세요~ㅜㅜ
그런 생각들지만,
글쓴이보다 힘든 사람들 많아요.
이 게시판에 올라오는 암환자들 이야기만 봐도 그렇구요.
글쓴이 최소한 건장하잖아요.
그것만 해도 큰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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