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7 개발을 위한 미 공군의 차기 수송기 개발계획(C-X)은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각국이 구소련의 확장 정책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갖던 시대였다. 특히 냉전 상황에서 발생한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구소련의 최초 침공사례여서 미국의 위기감은 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구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 어느 곳이라도 신속히 전투부대를 전개할 수 있어야 했다. 이러한 미국의 신속한 파병능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수송기였다. 1980년 초, 카터 미 대통령은 미군의 새로운 전략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신형 차기수송기 개발계획을 승인했다.
신형 수송기는 주로 유럽에서의 분쟁 상황을 가정해 C-5 전략수송기 정도의 탑재 능력과 항속 능력을 가지면서 전구(theater) 내에서 운용 가능한 수송기 개발을 목표로 했다. 즉 C-5·C-141과 같은 장거리 전략수송기의 직접적인 후속 기종은 아니고 새로운 개념의 대형수송기를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걸프전에서 전략수송기는 미 본토 또는 유럽에서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주요 기지까지의 수송을 담당했다. 그리고 주요 기지부터 전방기지까지는 C-130 전술수송기가 물자를 수송했다. 이처럼 수송기를 구분해 운용하는 것은 여러모로 비효율적이다. 이러한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신형 수송기는 미 본토에서 전방기지까지 직접 수송이 가능해야 했다.
장거리 대형수송기가 전방의 작은 활주로에서 운용이 가능하려면 단거리 이착륙 능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신형 수송기 개발의 관건은 단거리 이착륙 능력의 성공 여부였다. C-17 개발에서 요구된 단거리 이착륙 성능은 900m급 활주로에서 운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폭 15m의 유도로와 소형 주기장에도 주기가 가능해야 하므로 수송기 크기가 제한됐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C-17은 미 육군의 주력전차인 M1을 충분히 수송할 수 있는 수준의 탑재능력을 요구받았다.
개발에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단거리 이착륙 성능은 기존에 시험 개발된 YC-15 중형 수송기에서 검증된 신기술을 적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YC-15는 1970년대 중반에 고성능 중형 단거리 이착륙 수송기 계획에 의해 개발됐지만 실용화되지 못한 기종이었다. YC-15에는 엔진 배기를 고양력장치에 직접 분출해 큰 양력을 얻을 수 있는 신기술이 적용됐다.
<C-17의 원형기 격인 YC-15>
완성된 C-17의 성능은 C-5·C-141 전략수송기와 C-130 전술수송기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었다. C-17은 78톤의 화물 탑재가 가능해 C-5의 118톤에는 부족하지만 C-141의 40톤보다 우수했다. 최대화물 탑재 시 항속거리는 4300㎞로 C-5의 5500㎞보다 부족했지만 역시 C-141의 3600㎞보다 길었다.
전략수송기로서 C-5에 준하는 성능을 보인 C-17은 전술수송기 특유의 초저공물자투하(LAPES)와 비포장 활주로 운용능력을 갖췄다. 특히 지상에 착륙하지 않고 낙하산을 이용해 초저공에서 물자를 투하하는 능력은 미군의 기존 수송기로는 C-130만 가능했다. 이처럼 전략수송기와 전술수송기의 능력을 고루 갖춘 C-17은 22대가 수출됐고, 미 공군용으로 총 190대가 생산돼 미군의 핵심 수송기로 운용되고 있다.
기사 출처 : <조용민 전사연구가> 국방일보 8월 기사
사진 출처 : 각종 인터넷사이트
기타 C-17사진 모음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