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에서 항공기를 발진시키는 것을 Submarine aircraft carrier(잠수함 항공모함이라 해야하나?)
잠수함 항공모함(Submarine aircraft carrier)란, 정찰이나, 공격임무 수행이 가능한 고정익 항공기(헬기가 아닌)를 탑재한 잠수함을 말한다.
이들 잠수함은 2차대전 때 매우 구체화되어 일부 제작되었는데, 특히 일본의 I-400이 가장 실용화되었고, 이와 유사한 AM급 잠수함도있었으며, 프랑스의 Surcouf를 포함한 일부 국가도 거의 실용화 되었다. 하지만 2차대전이 종전되면서 이들의 효용성은 사라지고말았다.
<일본이 제작한 I-400 잠수함. 비록 일본이지만 정말 경이적인 그들의 시도와 기술에 놀랄 뿐이다>
일본의 I-400과 AM급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국가에서 운용했던 잠수함 적재 항공기들은 주로 정찰임무를 담당하였다. 항공모함의 항공기 들은 주로 공격임무를 담당하는데 비해 좀더 먼 정찰거리를, 은밀하게 정찰을 하기 위해서는 잠수함으로 적 지역에 최대한 접근하여 잠수함에서 이륙하여 정찰하는 것이 생존성과 정찰시간에서 유리했기 떄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두 잠수함 항공모함은 진주만공격에 이어 미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1차대전중의 개념
독일은 잠수함의 종주국 답게 1차대전중에 실험적인 항공기 적재 잠수함을 보유한 첫 국가다. 1차대전중 FF29라는 정찰기를 개조하여 폭탄 1발(12Kg)을 장착하고 U-12 잠수함에 적재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잠수함은 제작되어 실전에 투입된다.
<FF29라는 정찰기를 개조하여 U-12 잠수함에 적재하고 실험 항해하는 모습. 항공기를 싵고가는 동안 잠항은 불가능 하였다>
1914년 12월 독일을 출발한 U-12는 영불해협을 지나 탬즈강을 거슬러 올라 런던 근교에 폭탄을 투하하는데 성공하여 (기술적으로)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물론 폭탄의 크기로는 매우 미약하여 약간의 피해만 입혔을 뿐이지만 당시로는 독일에서 영국을 공격할 만큼의 연료 탑재가 불가능했고, 항속거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향후 충분히 적을 두렵게 할 가능성과 향후 잠수 항공모함의 가능성면에서는 충분히 가치있는 실험적인 사건이었다, .
<FF29라는 정찰기를 개조하여 U-12 잠수함에 적재하고 실험 항해하는 모습>
이 성공에 힘입어 잠수함에 항공기를 적재하고 잠수함에서 이륙한 후 공격하는 개념을 정리하여 작전개념이 수립되었다. 이 당시 잠수함은 은밀성만을 요구하여 그리 깊이 잠항 하지 않았다 바로 물속으로만 들어가는 정도였으며, 이때 비행기는 사실상 랜딩기어 정도만 제외하고 수면위로 올라있는 상태였다. 1915년 1월 15일 U-12는 다시 FF-29를 적재하고 출항했다. 하지만 작전에서 예상치 못한 것은 파도였다. 잠수함 보다 훨씬 넓은 폭의 비행기가 파도에 휩쓸려 흔들거리자 함장은 비행기가 파손되고 잠수함 까지 위험할 것으로 판단 즉시 이륙을 지시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상이륙을 하고 조종사는 영국 해안가까지 접근했다가 모기지로 되돌아왔다. 재시도는 성공하였으나 좀더 성공적인 임무를 위해서는 개량과 절차 개선이 필요한 것을 절시하게 느끼게 되었다.
<비행기가 귀환하면 잠수함에 바다 밑으로 약간 내려간 후, 비행기를 잠수함 위로 옮겨논 상태에서 잠수함이 다시 부상하여 회수한다. 물론 비행기는 수상 착륙이 가능하다>
전략 연구가들은 좀더 개량형을 제작하여 실험할 것을 해군사령부에 건의하였다. 하지만 투표로 결정된 바에 의하면 기술적인 면에서 현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달하고, 1917년까지 더 이상의 진전없이 동결되었다. 1917년 소형의 항공기를 제작하여 잠수함 상부 격실에 집어넣고 이륙시에 갑판을 활용할수있다는 원리를 제안했지만 1차대전의 종결로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영국도 독일의 잠수 항공모함에 충격을 받고 실험에 돌입했으나, 독일의 기술보다 낮은 상황에서 더 나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독일이 포기한 같은 이유로 실험을 종료하였다.
1차대전 이후 개발과정
프랑스
프랑스는 Surcouf라는 잠수함으로 1934년에 작전을 개시한 4,000톤급의 잠수함으로 당시로서는 2차대전이 시작할 때까지 최대의 크기였다. 이 잠수함이 설계된 개념은 잠수함 전망탑에 1대의 정찰기를 분해하여 저장하고 잠항을 하였다가, 필요한 지역에서 부상하여 비행기를 조립하고 잠수함에는 어뢰발사대와 기총등을 장착 조립하는 개념이었다.
<프랑스의 Surcouf. 모형도 상부 전방 갑판에보면 항공기 한대가 보인다>
<Surcouf 에서 항공기 발진을 준비하는 과정>
<Surcouf에는 항공기용 격실이 있어서 독일에서 실패를 극복하고 항공기를 넣은 상태에서 잠항이 가능했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도 Ettore Fieramosca라는 잠수함에 방수가되는 격납고를 상부에 설치하여 정찰기를 내장한다는 개념이었다. 정찰형 항공기는 1928년 Macchi사에서 M.53을 제작하고 Piaggio에서는 P.8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완성되기전 프로그램은 취소되어 행거가 제거된체 이탈리아 해군으로 잠수함이 이관되었다.
<이탈리아도 Ettore Fieramosca라는 잠수함. 충분한 크기의 잠수함으로 항공기를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취소되어 실제 항공기를 탑재한 사진은 없다>
일 본
1937년부터 38년까지 무려 수상이착륙이 가능한 항공기를 적재할수있는 잠수함 J3를 42척을 건조하였다.
<스완섬에 좌초된 J3 잠수함. J3잠수함이 항공모함을 운영한 사진을 구할수가 없었다>
영 국
1차대전중 독일의 개념을 발전시켜 1928년에 M2 잠수함을 발전시켜 소형 정찰기를 적재할수있는 격납고를 가진 잠수함을 건조했으나, 1932년 사고로 잠수함과 항공기 모두 손실되면서 계획이 취소되었다.
<영국의 M2 잠수함에서 항공기를 발진 준비하는 사진이다>
미 국
미국은 1922년부터 이 개념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ar-Heinkel U-1 항공기 2대를 구매하여 잠수함 운용을 연구하였으며. 1923년에 사고로 항공기는 모두 손실되었다. 하지만 연구는 충분하게 진행되어 소형 항공기 MS-1 12대를 주문하여 운영하게되었다.
하지만 유사한 개념으로 1933년에 영국에서 운영하던 M2 잠수함이 S-1 항공기를 발진 시키다가 잠수함이 함께 침몰한 사건 때문에 미해군은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2차 대전중
독일은 1939년에 U-boat를 대형화한 Type IX D2 "Monsun" 잠수함 갑판에 캐터펄터식 사출장치를 설치하고, Arado Ar 231를 탑재하여 운용할려고 했으나 전쟁이 터지면서 계획은 보류되었다. 하지만 1942년 인도양에서 소형 오토자이로 회전익 항공기를 이용한 잠수함 운용개념이 실용화되었다. 이때 사용된 헬기는 거의 동체와 엔진, 로터를 3등분하여 잠수함이 수면위로 올라오면 정비사들이 조립하여 띄우는 개념이었다. 헬기는 주로 정찰임무에 사용하였다.
일본의 본토 공격
일본은 잠수함 항공모함 개념을 매우 실현화 시킨 경우이다. 어떠한 목적의 항공기이던 항공기를 이륙시킬수있는 잠수함수가 무려 47대에 달했다. 어떤 잠수함은 한대, I-400계열 잠수함은 3대까지 폭격기 적재가 가능했다.
I-25 잠수함은 실제로 1942년 9월 항공기를 발진시켜 오레곤주 Brookings에 폭탄을 투하하기도했다.
하지만 사람이나 건물에게는 피해를 주지못했다, 그냥 급하게 떨어뜨리고 오느라 숲에 투하하고말았다. 발진 후 기다리는 잠수함 지휘관과 본토 지휘관들은 미국본토에 폭탄을 투하할수있는지에 초미의 관심을 보였던터라, 폭탄투하에 따른 피해와 전술적인 가치는 별로 고려하지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빨리 투하하라고 재촉을 하였고, 조종사 Fujita는 폭탄을 투하시킨 후 피해상황을 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물론 당시에도 약간의 안개 끼어서 정확한 폭격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미상의 비행물체로인해 미 해군이 요격기를 출동시켜 추적을 했지만 일본의 공격기와 잠수함은 유유히 잠항하여 일본으로 되돌아왔다. Brookings 사람들은 숲에 불이난 것을 보고 소방대원들이 출동하여 불을 껐지만 화재원인이 미심쩍어 FBI가 출동하여 조사한 결과 폭탄에 의한 화재임을 확인하게되고, 급기야는 1962년 폭탄을 투하한 장본인인 Fujita가 Brookings를 방문하여 폭탄 투하 당일 소지했던 자살용 사무라이칼을 시에 기증하였다. 후지타는 1978년에 손녀와 함께 한번더 Brookings을 방문한 후 1997년에 사망하였다. 이 폭탄투하는 미국역사상 처음이자 유래가 없는 본토에 폭탄을 투하한 기록이다. 이 사건은 두리틀 특공대가 일본 본토에 폭탄을 투하한 후 5개월이 지난 사건이다.
<I-25 잠수함에서 항공기가 발진하고있다>
AM Type (I-13,I-14)
일본의 AM (A Modified) 타입의 잠수함은 2대의 대형 수상 이착륙함(Aichi M6A1 폭격기 개조형)을 내부 격납고에 격실로 수송, 이륙시킬 수있는 잠수함이다. 탑재한 폭격기는 800Kg의 폭탄을 투하할 수있었다. 잠수함은 37,000Km를 운할 할 수있으므로 동쪽이던, 서쪽이던 미국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았다. I-13은 전투중 미해군 순양함에 의해 손실되었으며, I-14는 전쟁 종료기에 미군에 항복하여 미국에 의해 폐기되었다.
<I-13에서 항공기 발진하는 삽화>
Sentoku Type (I-400, I-401, I-402)
I-400 계열은 배수톤 6,500 ton에 길이가 120미터에 달했다. 통상의 잠수함 크기에 3배에 달한다. 1940년대 일본의 제한된 자원으로 이런 기술력과, 생산 능력에 감탄만 흐른다. 갑판 상부에는 대공포, 정비격납고 등을 설치했으며, 당시로서는 최고의 어뢰도 발사할수있었다.
잠수함 이름은 센토쿠라하였고, I-400, I-401, I-402로 일련번호가 부여되었다. 항속거리는 지구를 한바퀴반을 돌수있었다고하니, 대단하다.
<일본의 I-400 계열 잠수함. 세이란 전투기가 상부에 위치해있다>
3대의 세이란 (Aichi M6A) 폭격기를 탑재 할 수있었으며, 각 폭격기는 800kg 폭탄을 1000Km 이상 거리에서 투하 할 수있었다. 세이란이란 이름은 마른 하늘(세이)의 폭풍(란)이란 의미로 미국의 고요한 본토에 청천 벽력같은 폭탄을 퍼붓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행거에 비행기를 수용하기위해 날개를 완전히 접어 넣을 수있도록 하였으며, 수직 꼬리날개도 접을 수있어서 결국 비행기 전체가 프로펠러 사이즈안에 모두 들어올수있었다. 4명의 비행지원 정비사가 3대 모두 45분만에 출격시킬수있으며, 이륙은 상부 갑판에 설치된 37미터짜리 캐터펄터로 이루어진다.
<I-400 잠수함의 항공기 운영 모습>
<I-400은 항공기 3대를 보관할수있는 완전한 격실을 갖추고 있었다>
<전후 미군이 회수된 I-400 잠수함을 살펴보고있다>
미래의 형태
현재는 잠수함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없다. 아직은 잠수함에서 이륙하는 항공기라는 것이 너무나도 성능 제약이 많고, 이륙을 위해서는 잠수함이 부상해야하는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문제로인해 득보다는 실이 월등하게 많기 때문이다. 현재 바닷속 항공모함 개념으로 바닷속에서 잠수함을 떠나고 다시 수중의 잠수함으로 돌아오는 수중 공격함을 활용하는 개념은 구상된 상태다. 하지만 전술적 가치를 지닐만한 공군의 공격기와 맞먹는 성능에, 최소형으로 만들어 잠수함에 수용하는 연구비용을 생각하면 어느 누구도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고있다.
미해군은 정찰용 UAV를 어뢰 발사관을 이용하여 쏘아올리는 방식은 적극적으로 고려하고있으며, 특히 독일의 212급 잠수함이 이를 가장 먼저 실용화 시킬수있을 것으로 예측하고있다. 정찰용 UAV가 잠수함 발사 가능하다면, UAV 공격기인 프레데터 처럼 정찰 임무외에도 간단한 미사일 발사도 가능하지 않을까? 과학이 발달하면 수중과 공중을 모두 아우르는 전투기도 나타나지 않을까? 과연 공상만의 생각일까?
출처: 항공관련 블로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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